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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수님 소식] 황금중 교수님 경향신문 기고문 “문·이과 통합인가 문과 침몰인가”
작성일
2022.10.31
작성자
교육학과
게시글 내용

문·이과 통합인가 문과 침몰인가

입력 : 2022.10.27 03:00 수정 : 2022.10.27 03:04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현재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 중 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이과형 과목을 택한다. 문·이과통합 교육과정 체제에서 처음 치른 지난해의 수능과 대학입시의 결과에서 문과형 과목을 택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문과형 과목(수학의 확률통계 등)을 택해서는 점수를 잘 받아도 표점에 밀려서 이과형 과목(수학의 미적분이나 기하 등)을 택한 학생들에게 경쟁이 될 수 없고, 특히 상위권 대학에는 갈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니 자신의 적성을 불문하고, 대학에서 문과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도 우선 이과생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수학(및 과학)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한다. 다행히 어느 정도의 적성과 흥미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입시의 고통은 배가된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 기간에 자신의 적성인 문과적 소양을 기르고 발휘할 기회는 크게 줄게 된다.

심화 수준의 수학과 과학 공부를 선호하지 않는 학생은 좋은 대학을 꿈꿀 자격이 없는가? 공부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적성의 다양성을 해치는 폭력이 아닌가? 이과형, 문과형 선택이 마치 우열반처럼 나뉘는 현장에서 한쪽 아이들이 겪을 심리적 소외와 불안은 어떻게 하나?

상황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일단 통합 수능에서 평가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수학과 탐구 선택과목 점수산정에서의 표점 반영 정책이 있다. 선택과목에 따른 응시자들의 평균을 근간으로 점수를 차등 산정하다 보니 문과형 과목에서 설령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상대화된 최종 점수는 훨씬 낮아진다. 문과형 과목 응시자의 경우 ‘수포자’들도 많아서 평균이 낮게 형성되는 탓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위권 학생의 이과형 과목 선택이 가속화되어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는 이 문제가 특히 수학에서 크게 나타났지만 이제부터는 사회와 과학 분야의 탐구 과목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장에서는 심지어 문과형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 수의 감소에 따른 사회탐구 과목의 축소 얘기까지도 나온다. 교육과정 편성이나 교사 수급에서의 편중 및 불균형 현상도 우려된다.

대학의 문과 계열의 피해도 크다. 대학에서는 이미 ‘문송’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돌 정도로 문과의 위축이 있어 왔는데, 이번 사안은 이에 기름을 부어 문과가 기형화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른바 ‘문과침공’이 일어났다.

지난해 입시에서 한 유명 대학의 철학과는 정시 정원의 80%를, 적성보다도 어떤 학과든 상위권 대학 입학이 중요했던 이과 학생들이 차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이 학생들이 과연 잘 적응할 것인가? 입학 이후에도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이과로의 길을 다시 모색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떠나지 않겠는가? 교수들은 이 학생들과 얼마나 깊은 학술적 교감을 할 수 있을까? 문과침몰은 고등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통합적 인재양성이라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문·이과통합 교육과정 정책이 대입시 정책과 연동되면서 ‘문과침몰’ 혹은 ‘전면 이과화’라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 어찌 보면 표점 반영이라는 작은 기술적 요인이 이 대형 사건을 유발한 셈이 되었다. 교육 정책의 추진에서 특히 입시와 관련된 사항의 경우 무엇보다 정밀하게 다뤄야 함은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데도 오류를 또 반복했고 이번 사안이 끼친 해는 심각하다.


지금이라도 교육당국은 문제가 드러난 만큼 표점 반영 방법이 평가의 공정성을 기하는 방안으로서 애초 적절한 것이었는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면밀하게 따지면서 풀어야 한다. 표점 건만이 아니라 문과침몰을 야기한 모든 요인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책임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문과침몰은 가속화되고 이는 이후 한국 사회의 지성계 전반을 기형화하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0270300035